Thursday, August 6, 2009
[국문 번역]Text Fwd: DOMINATING PALAU
Text informed in Bruce Gagnon blog
Tuesday, August 04, 2009
DOMINATING PALAU
I made my first trip to Japan in 1984 to attend the World Conference against A & H Bombs. While at the event one evening I attended a film showing about the island of Palau in the Pacific. I don't think at that time I'd ever heard of Palau. The documentary told the sad story of their efforts to resist US pressure to give up their Nuclear-Free constitution. One scene I will always remember was a family sitting in their thatched hut watching TV and seeing President Ronald Reagan come on the screen urging Palauans to vote down their constitution in order to help the US fight the Communism. Below is a part of one moving statement from the conference here in Hiroshima.
By Balhaim Sakuma
Executive Director, Belau Cares Palau
After more than 200 years under foreign domination Palau was "allowed" by the US to become an independent nation. We were told by the US that we could choose the kind of government we want and write our own constitution. Thirty-one years ago, in 1978, the people of Palau wrote the first Nuclear-Free Constitution in the world and adopted it by an overwhelming majority vote of 92%. This took the US by surprise. Immediately a team from Washington DC arrived in Palau with a message that Palau could not choose a Nuclear-Free Constitution government.
The succeeding 10 years were years of turmoil and conflict between the US and Palau because we stood up and told the US that we would not allow any kind of nuclear to enter within the 200-mile territory of Palau. Palauans suffered so much and went through so much hardship during the 10 years of fighting with USA for our right to be Nuclear-Free. The President Haruo Remeliik, who supported the nuclear-free constitution, was assassinated. At that time I was fighting with him as an advisor to him. Some of us lost their lives. When women activists held a meeting at a house, a bomb was thrown to them. When I was attending the World Conference in early eighties, my house was burnt out. I myself was also attempted to be killed several times. The US forced us to hold a national referendum about six times to get the people's support for the revision of the constitution. But it did not meet the requirement of the constitution, 75% of the people's support. The US finally came up with some kind of legal maneuvering to lower the 75% requirement to 50% and forced Palau to accept the Compact of Free Association. But Palauan people fought against such violence, intimidation and bribery and no one can dispute the fact the majority of Palauans are against nuclear weapons.
People of the Pacific have been suffering not only from war but from damage of nuclear weapons. The US conducted 57 nuclear tests at Bikini and Eniwetok in the Marshall Islands after WW II. France tested their bombs in Tahiti. UK tested at Christmas Island and Australia. Thus, the Pacific has been used as a nuclear playground. The people are still nomads with no place they can call home because their islands are highly contaminated.
After the nuclear-free constitution was neglected by the US, Palau was forced to conclude the Compact of Free Association, which substantially made Palau a colony of the US. The US can use our lands for its military if and when the US chooses to.
Our lands, our life, the future of our children are still determined by big powers. Even if we are a small island nation, we have national pride. It is us who should determine how to use our lands and what nation we should establish relationship with.
팔라우를 지배하기
2009년 8월 4일, 브루스 개그논 씀
저는 1984년 원자 폭탄 및 수소 폭탄에 반대하는 국제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으로 첫 여행을 간 적이 있읍니다. 한 저녁의 행사에서 저는 태평양의 팔라우라는 섬에 관한 영화를 보았읍니다. 저는 당시 제가 팔라우라는 섬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다큐멘타리는 그들의 비핵 헌법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미 정부에 저항하는 그들의 노력에 관한 슬픈 이야기를 들려 주었읍니다. 제가 항상 기억할 장면은 한 가족이 초가집에서 TV를 보는데
스크린에 나온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미국이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을 돕기 위해 팔라우 인들에게 그들의 헌법에 반대표를 던지도록 촉구하는 것이었읍니다. 아래는 여기 히로시마 회담에서 나온 것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성명의 한 부분입니다.
발하임 사쿠마 (Balhaim Sakuma)
벨라우 캐어스 팔라우의 상임 감독 (Executive Director, Belau Cares Palau)
200년이상 지속된 외세의 지배이후 팔라우는 미국으로부터 독립적인 국가가 되도록“허락”받았읍니다.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우리가 원하는 정부를 선택할 수 있으며 우리 자신의 헌법을 쓸 수 있다고 들었읍니다. 31년전인 1978년에 팔라우 인들은 세계에서 첫번째로 비핵 헌법을 썼고 92%라는 압도적인 대다수의 찬성으로 그 것을 채택햇읍니다. 이는 미국을 놀라게 했읍니다. 수도 워싱턴에서 한 팀이 즉시 팔라우에 도착해 팔라우는 비핵 헌법을 선택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주었읍니다.
이 후 10년간은 미국과 팔라우 사이 혼란과 갈등의 세월이었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어섰고 미국에게 우리는 팔라우 영토로부터 200마일 이내 어떠한 핵도 허락하지 않겠다고 미국에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팔라우 인들은 우리의 비핵 권리를 지키기 위한 10년간 미국과의 싸움에서 많은 고통을 당했으며 너무나 많은 역경을 겪었읍니다.
비핵 헌법을 지지했던 대통령 하루오 레멜리이크는 살해되었읍니다. 당시 저는 그의 자문 위원으로서 그와 함께 싸우고 있었읍니다. 우리중의 몇몇은 그들의 생명을 빼앗겼읍니다. 여성 활동가들이 한 집에서 회의를 했을 때, 폭탄이 그 들에게 떨어졌읍니다. 제가 80년대 초기 국제 회담에 참석하고 있었을 때, 제 집이 불타버렸읍니다. 제 자신에게도 몇 번 살해 시도가 행해졌읍니다. 미국은 헌법 개정에 대한 팔라우 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우리가 국민 투표를 약 6번이나 하도록 강제햇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75% 민중의 지지라는 헌법의 필요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읍니다. 미국은 마침내 75% 필요 요건을 50%로 낮추는, 법적인 책략 같은 것을 들고 나왔고 팔라우 인들이 자유 연합 계약 Compact of Free Association 을 받아 들이도록 강제했읍니다. 그러나 팔라우 인들은 그러한 폭력, 위협, 그리고 뇌물에 저항했고 아무도 팔라우 인등의 대다수가 핵무기에 반대한다는 사실을 논박할 수 없읍니다. .
태평양의 사람들은 전쟁 뿐만이 아니라 핵 무기로 인한 손상으로부터 고통을 겪어왔읍니다. 미국은 2 차 대전 이후 마샬 제도의 비키니와 에니위토크에서 57회의 핵 실험을 단행했읍니다. 프랑스는 타히티에서 그들의 폭탄을 실험했읍니다. 영국은 크리스마스 섬과 호주에서 실험했읍니다. 그러므로 태평양은 핵 운동장으로 이용되어 왔읍니다. 사람들은 그 들이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이 없는 유목민들인데 그 들의 섬이 심하게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비핵 헌법이 미국에 의해 무시된 이후 팔라우는 자유 연합 계약을 결론지도록 강제되었읍니다. 그 자유 연합 계약은 팔라우를 미국의 지속적인 식민지가 되게 했읍니다. 미국은 원하기만 하면, 그리고 언제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땅을 그 군대를 위해 사용할 수 있읍니다.
우리의 땅들, 우리의 삶, 그리고 우리 어린이들의 미래는 아직도 강대국들에 의해 결정됩니다. 비록 우리가 작은 섬 나라이지만 우리에게는 민족적 자랑이 있읍니다. 어떻게 우리의 땅을 사용해야 하고 우리가 어떤 나라와 우리가 관계를 맺어야 할 지를 결정해야 한는 것은 우리인 것입니다.
-역주 링크-
팔라우:
영문
http://en.wikipedia.org/wiki/Palau
한글
http://ko.wikipedia.org/wiki/%ED%8C%94%EB%9D%BC%EC%9A%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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