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들의 땅을 지키기 위하여 싸웠던 인디안들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백인들이 그들의 신성한 숲에 도로를 만들기 위하여 나무들을 잘랐습니다. 매일밤 인디안들이 나가서 백인들이 만든 그 길을 해체하면 그 다음 날 백인들이 와서 도로를 다시 짓곤 했습니다. 한동안 그 것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숲에서 가장 큰 나무가 백인들이 일할 동안 그들 머리 위로 떨어져 말과 마차들을 파괴하고 그들 중 몇몇을 죽였습니다. 그러자 백인들은 떠났고 결코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브루스 개그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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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August 31, 2010

[Site Fwd][Peace Philosophy Center] August 9 Memorial for Korean A-bomb Victims in Nagasaki 8月9日長崎原爆朝鮮人犠牲者追悼早朝集会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도 조조집회 메시지

* Peace Philosophy Center 평화 철학 센터

* Korea translation was provided from the original site.
* 국문 번역은 원 소스 사이트에서 온 것임.

Monday, August 30, 2010
August 9 Memorial for Korean A-bomb Victims in Nagasaki 
8月9日長崎原爆朝鮮人犠牲者追悼早朝集会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도 조조집회 메시지


Below is the keynote speech by Dr. Takazane Yasunori, Director of
Oka Masaharu Memorial Nagasaki Peace Museum, and Chair of the Association to Protect Human Rights of Korean Residents of Nagasaki, at the early morning memorial gathering for the Korean victims of the Nagasaki atomic bomb, on August 10, 2010. Our Hiroshima/Nagasaki Peace Tour group always visits this memorial that starts at 7 a.m., before we visit the Shiroyama Elementary School memorial and Nagasaki City's main ceremony. The photo above is the monument for the Korean victims, located at Nagasaki Atomic Bomb Hypocenter Park.

The monument was built in 1979, and since then, a gathering in memory of the Korean victims has been held in front of the monument every year, to remember and to pay tribute to the over 20,000 Korean victims of the atomic-bombing of Nagasaki, and over 10,000 who were killed. This is the fourth year that I attended the ceremony, and I had an impression that the crowd was particularly large this year, perhaps around 400 people, compared to 200 or so for the previous years. This could be related to the fact that this year commemorates the 100th anniversary of Japan's annexation of Korea, and the UN Secretary General Ban Ki-moon, a Korean national, visited both the Korean memorials in Nagasaki and Hiroshima.

The speech is available in Japanese and, for the first time, in Korean this year. Takazane takes months to prepare for this August 9 speech every summer, and the speech of this year places specific emphasis on the 100th anniversary of Japan's forceful annexation of Korea. To summarize the main points, Takazane called for Japan and its people to recognize the Korean victims of the atomic bombing, not just as victims of a nuclear weapon, but also as victims of Japan's colonization of Korea, and Japan's invasive war in Asia. He stressed the illegality and unjustifiability of the "Japan-Korea Annexation Treaty" of 1910. He pointed out there is crucial lack of consciousness in Japan about their responsibility for the division of Korea, and condemned the Japanese government for continuing to implement policies that reinforce the division and hostility in Korean Peninsula. He also criticized the Japanese government's continued alienation and discrimination against Korean residents in Japan, particularly their exclusion of Korean schools from the tuition subsidy program for high school students. Referring to the unresolved issues of the military sex slavery and forced labour, he called for the government to legally recognize the responsibility for and provide individual compensation to the Korean war victims.

Takazane concluded his speech with the set of five demands to the Japanese government: 1)to declare the 1910 annexation treaty null and illegal; 2)to pave the way for the Atomic Bomb Victims' Relief Law to be applied to the victims living in DPRK(North Korea); 3)to recognize the right to request compensation by individual victims of Japan's war, and to establish a "war reparations law"; 4)to include Korean high schools in the tuition subsidy program, and to waive tuition for the Korean elementary and junior high schools as well; 5)to resume a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DPRK.


Here is the speech, first in Japanese then in Korean.


長崎原爆朝鮮人犠牲者追悼早朝集会メッセージ


  この長崎の街に原子爆弾が投下されて六五年目の今日、私たちは朝鮮人原爆犠牲者追悼碑の前に集いました。半世紀を超える歳月が流れたとはいえ、朝鮮人原爆 犠牲者の無念に思いを馳せずにはいられないからであります。絶対悪である核兵器を使用した米国の責任は人類史上永遠に追及さ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駐日大 使が広島の平和記念式典に参加したとはいえ、法的責任も道義的責任さえも認めず、ただ大量殺戮兵器としての脅威にのみ着目している現状は言語道断でありま す。しかしながら、原爆の投下責任を糺し、原爆の悲惨さと核兵器廃絶を訴えるだけで核時代を生きる私たちの使命は果たせるといえるでしょうか。私はそこに もエゴイスティックな思考が隠されていると思えてなりません。なぜならば、朝鮮人原爆犠牲者は核兵器の犠牲者であるばかりではなく、日本の朝鮮侵略とアジ ア侵略戦争の犠牲者でもあるからです。日本国民は自国のこの加害責任を深く心に刻み、反省と謝罪と賠償を怠ってはなりません。

 日本が朝 鮮を侵略しなければ、朝鮮人が原爆の犠牲になることもありえませんでした。韓国強制併合から一〇〇年、「保護条約」から一〇五年の今年、日本国民はこれら の「条約」がいかに暴力的な威圧と欺瞞に満ちた不法なものであったかをどれほど認識しているでしょうか。「併合条約」の第一条と第二条をみるだけでもその 欺瞞は明らかであるにもかかわらず、日本政府をはじめ多くの国民も「合法的に交わされた有効な条約」と信じ込んでいる現実があります。第一条「韓国皇帝陛 下は韓国に関する一切の統治権を完全かつ永久に日本国皇帝陛下に譲与す」。第二条「日本国皇帝陛下は前条にかかげる譲与を承諾しかつ全然韓国を日本帝国に 併合することを受諾す」。韓国皇帝が統治権を譲与すると申し出たから承諾して併合するのだという。欺瞞であるのみか、これほど他国を侮辱した「条約」があ りうるでしょうか。当初から不法・無効であることは明らかです。

 また、私はこの不法な「併合条約」のもとで断行された無数の暴虐に目を 向けるのみならず、侵略を賛美し推進した思想的背景にも着目しなければ、原爆犠牲者の無念も暴虐の犠牲者の無念も決して癒されることはないと思います。 「取り易き朝鮮・満州・支那を切り随え・・・」と弟子たちに説いた吉田松陰や、「朝鮮は腐儒の巣窟、上に磊落果断の士人なくして、国民は奴隷の境遇・・・ 斯かる軟弱無廉恥の国民・・・脅迫と決したる上は国務の実権を我手に握り、韓人等は単に事の執行に当たらしむるのみにして、・・・喙を容れしめず・・・」 と、偏見をほしいままにして脅迫による支配までも鼓吹した福沢諭吉の侵略思想はどれほど認識され、反省されているでしょうか。福沢諭吉が最高紙幣の肖像で あるところにも、反省はおろか、偉人として崇拝している現実があるといわざるをえません。侵略思想の大罪を告発し、二度とその轍は踏まないと誓うことこ そ、犠牲者を追悼する私たちの責務であると信じます。

 日本は朝鮮の南北分断をもたらした根源的責任も問われます。日本の侵略がなければ 朝鮮の分断はありえないからです。それにもかかわらず、戦後日本は分断を煽り、統一を阻害する政策を一貫して執り続けました。昨年の政権交代によってもこ の政策を見直す気配はありません。私は南北融和から再び対立の傾向を濃くしている情況に憂慮の念を禁じえませんが、日本政府が相変わらず対立を助長する政 策に終始していることに失望と義憤を覚えます。南北分断の根源的責任の自覚が完全に欠如しているからです。対立に拍車を掛けるこの無責任な態度は内政にも 見られ、朝鮮学校の存在と民族教育を露骨に敵視しています。本来無償であるべき初等中等教育から朝鮮学校を排除して国費を一切支給せず、ましてや新たに実 施された高校無償化から朝鮮高級学校を排除して平等待遇を拒むとあっては人権侵害に他ならず、世界から指弾されて当然であります。国連機関から差別撤廃を 勧告され、韓国の言論界からも強く批判されています。日本政府は一刻も早くこの恥ずべき差別待遇を放棄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日本軍 「慰安婦」問題と強制連行問題をはじめ、未解決のまま今日に至っている問題も忘れてはなりません。国家間の戦後処理で「解決済み」とすることは許されませ ん。国家といえども個人の損害賠償請求権を奪うことはできないからです。朝鮮人原爆犠牲者の無念の叫びに応えるためにも、私は次の五点を日本政府に強く要 求します。皆さんの賛同を得られれば幸いです。

一、 「韓国併合条約」は当初から不法・無効であることを宣言すること
一、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在住の被爆者に被爆者援護法適用の道を開くこと
一、 個人の損害賠償請求権を認め、抜本的「戦後補償法」を制定すること
一、 朝鮮高級学校の無償化に加え初級中級学校の国費による無償化を図ること
一、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との国交正常化を実現すること

  最後になりましたが、日本軍「慰安婦」問題や遺骨の返還運動に全力を注ぎ、韓国政府の「日帝強占下強制動員被害真相糾明委員会」の任務にも日本との懸け橋 となってかけがえのない貢献をされた福留範昭氏の急逝に衝撃と哀しみを抑えることができません。同委員会の調査員と共に長崎にも度々来られた氏の面影を偲 び、偉大な思想と実践に深く思いをいたしながら、朝鮮人原爆犠牲者追悼碑の前で哀悼の誠を捧げたいと存じます。

   二〇一〇年年八月九日

   長崎在日朝鮮人の人権を守る会代表  高 實 康 稔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도 조조집회 메시지

이 곳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지 65년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는 조선인 원폭 희생자 추도비 앞에 모였습니다. 반세기를 넘는 세월동안 풀리지 못한 조선인 원폭 희생자의 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절대악인 핵무기를 사용한 미국의 책임은 인류사상 영원히 추궁당해야 마땅합니다. 주일 미국대사가 히로시마 평화기념식전에 참석했다고는 하나, 법적인 책임이나 도의적인 책임도 인정하지 않은 채, 단지 대량학살무기의 위협에만 주목하고 있는 현상은 언어 도단입니다. 그러나 원폭투하의 책임을 규명하고 원폭의 비참함과 핵무기 폐기를 호소하는 것만으로 핵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사명이 완수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여기에도 이기적인 사고가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조선인 원폭 희생자는 핵무기의 희생자일뿐 아니라 일본의 조선침략과 아시아 침략 전쟁의 희생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일본 국민은 자국의 가해 책임을 마음 속 깊이 되새기며, 반성과 사죄와 배상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지 않았다면, 조선인이 원폭에 희생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한국 강제병합 100년, (을사)'보호조약'으로부터 105년이 흐른 올해, 일본 국민은 이들 '조약'이 얼마나 폭력적인 위압과 기만으로 가득찬 불법인가를 얼만큼 인식하고 있을까요. '병합 조약' 제1조와 2조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 기만성은 명백하지만, 일본정부를 시작으로 많은 국민이 '합법적으로 체결된 유효한 조약'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1조 "한국 황제폐하는 한국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일본제국 황제폐하에게 양여한다.", 제2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전 조항에서 제기한 양여를 승낙하며, 한국을 완전히 일본제국에 병합하는 것을 수락한다." 즉, 한국 황제가 통치권을 양여하겠다고 스스로 요청했기 때문에 그것을 승낙하여 병합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기만일 뿐 아니라, 이 정도로 타국을 모욕한 조약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 조약은 당초부터 불법・무효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또한 저는 이 불법적인 '병합 조약' 아래 단행되었던 수많은 포학 행위에도 관심을 갖되, 침략을 찬미하고 추진했던 사상적 배경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폭희생자의 원통함도, 잔인한 학대에 희생되었던 사람들의 한(恨)도 결코 치유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빼앗기 쉬운 조선・만주・지나(중국)를 정복하고・・・"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나 "조선은 부패한 유학자들의 소굴・・・위로는 도량이 크고 결단성 있는 선비가 없으며, 백성들은 노예의 처지・・・이러한 연약하고 염치가 없는 국민・・・협박한다고 결정한 이상은 국무 실권을 우리 손에 잡아, 한인 등은 단순히 일의 집행만 맡게 하고・・・참견하지 못하게 하여・・・"라는 등 제멋대로 편견을 들이대, 협박에 의한 지배마저 고취했던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의 침략사상을 우리는 얼만큼 인식하고 반성하고 있을까요. 후쿠자와 유키치가 일본 엔화의 최고 화폐인 1만엔 짜리 지폐의 인물이라는 점은, 반성은커녕 그를 위인으로 숭배하고 있다는 일본의 현실을 뒷받침합니다. 침략사상의 대죄를 고발하고, 두 번 다시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야말로 희생자를 추도하는 우리의 책무임을 믿습니다.


일 본은 한반도의 남북 분단을 초래한 근원적인 책임도 추궁당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침략이 없었다면 조선의 분단도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후 일본은 오히려 한반도의 분단을 부추기고, 통일을 저해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펼쳐 왔습니다. 지난해 정권교체에 의해서도 이 정책을 재검토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남북이 화해의 흐름에서 다시 대립 국면으로 기울어가는 정황에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만, 일본정부가 변함없이 대립을 조장하는 정책을 시종일관하고 있다는 점에 실망과 의분을 느낍니다. 남북분단의 근원적 책임에 대한 자각을 완전히 결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립에 박차를 가하는 이 무책임한 태도는 내정에서도 엿볼 수 있어,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의 존재와 민족교육을 노골적으로 적대시하고 있습니다. 본래 무상이어야 할 초중등교육에서 조선학교를 배제하고 국비를 일체 지급하지 않으며, 또한 새롭게 실시된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도 조선 고급학교는 베제해 평등한 대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권침해와 다름없으며, 세계로부터 지탄받아 마땅합니다. 유엔기관도 차별 철폐를 권고하였으며, 한국의 언론에서도 강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조속히 이 부끄러운 차별대우를 포기해야 합니다.


일 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연행 문제를 시작으로 하여, 오늘 이 시점까지도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는 문제 역시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간의 전후 처리로 '해결 완료'라고 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국가라 해도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박탈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조선인 원폭 희생자의 한맺힌 절규에 응답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다섯 항목을 일본 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여러분이 찬성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한국 병합 조약'은 당초부터 불법・무효라는 것을 선언할 것.
1.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피폭자에게 피폭자 원호법 적용의 길을 열
것.
1.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고, 근본적인 '전후 보상법'을 제정할 것.
1. 조선 고급학교 무상화와 더불어, 초중급 학교의 국비에 의한 무상화를 꾀할 것.
1.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과의 국교정상화를 실현할 것.


마 지막이 되었습니다만, 일본군'위안부' 문제나 유골 반환 운동에 온힘을 다했으며, 한국 정부의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한국측 위원회와 일본을 잇는 가교가 되어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공헌을 했던 후쿠도메 노리아키(福留範昭)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과 슬픔을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한국의 강제동원진상규명 위원회) 조사원들과 함께 나가사키에도 몇 차례 방문하였던 후쿠도메 씨의 모습을 그리며, 그 위대한 사상과 실천에 마음 깊이 생각을 옮겨 봅니다. 조선인 원폭희생자 추도비 앞에서 진심으로 애도의 마음을 올리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2010년 8월 9일
나가사키 재일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
대표 다카자네 야스노리(高實康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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